TR 11편(최종편) | TR 발진회로(콜피츠·하틀리·크리스탈 발진) 실무 활용

한 달에 2분씩 시간이 앞서거나 뒤처지던 장비 로그 때문에, 원인을 소프트웨어에서만 찾다가 일주일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범인은 코드가 아니라 기판 구석에 박힌 지름 3mm짜리 금속 원통, 크리스탈과 그 옆의 작은 커패시터 두 개였습니다.

TR 시리즈의 마지막 11편은 입력 신호 없이 스스로 진동을 만들어내는 발진회로입니다. 콜피츠와 하틀리 같은 LC 발진부터 MCU 옆에 늘 붙어 있는 크리스탈 발진까지, 같은 뿌리에서 나온 회로들을 한 줄로 이어서 정리합니다.

[발진회로]

발진회로란, 입력 없이 스스로 신호를 만드는 증폭기

발진회로(Oscillator)는 직류 전원만 주면 외부 입력 없이 일정한 주파수의 교류 신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회로입니다. 시계의 박자, 무선 송신기의 반송파, MCU의 클럭이 모두 여기서 나옵니다.

원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2편의 증폭기 출력 일부를 입력으로 되돌려주는 양성 되먹임(positive feedback)을 걸되, 그 신호가 한 바퀴 돌아왔을 때 처음 신호와 위상이 같아지도록 설계하는 것입니다. 마이크가 스피커 소리를 다시 주워 "삑" 하고 울리는 하울링과 같은 현상을, 원하는 주파수에서만 일어나도록 길들인 셈입니다.

이 조건을 바크하우젠 조건(Barkhausen Criterion)이라 부릅니다. 쉽게 말해 "되먹임 한 바퀴를 돌았을 때 신호가 줄어들지 않을 것(루프 이득 1 이상), 그리고 위상이 0도 또는 360도로 맞아떨어질 것"이라는 두 가지 약속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정확히 맞는 주파수가 곧 발진 주파수가 됩니다. 그 주파수를 골라주는 부품이 인덕터와 커패시터로 이뤄진 LC 공진회로, 혹은 수정(크리스탈)입니다.

한 줄 요약

발진회로는 증폭기 출력을 입력으로 되돌리는 양성 되먹임 회로입니다. 루프 이득이 1 이상이고 위상이 맞아떨어지는 주파수(바크하우젠 조건)에서 스스로 진동을 시작합니다.

시동과 진폭 안정, 노이즈에서 시작해 스스로 멈춰 서기까지

입력이 없는데 어떻게 시작될까요? 전원을 켜는 순간 회로 안에는 열잡음 같은 미세한 잡음이 항상 섞여 있습니다. 이 잡음 중 공진 주파수 성분만 루프를 돌 때마다 조금씩 커집니다. 그래서 시동 시점에는 루프 이득이 1보다 살짝 커야 신호가 자라납니다.

그런데 신호가 계속 커지기만 하면 큰일입니다. 진폭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TR이 포화와 차단 근처까지 밀려나면서 이득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루프 이득이 정확히 1이 되는 지점에서 진폭이 멈춰 섭니다. 3편에서 다룬 클래스 C와 비슷하게, 많은 LC 발진기에서 TR은 신호의 피크 근처에서만 잠깐씩 도통하며 에너지를 보충해줍니다.

이 과정에서 실무자가 알아둘 점은 시동 여유입니다. 루프 이득이 간신히 1을 넘는 아슬아슬한 설계는 온도가 변하거나 부품이 바뀌면 시동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탈 발진기에서는 발진 여유(oscillation allowance)를 5배 안팎 이상 확보하라고 권하는 자료가 많은데(권장치는 제조사마다 다릅니다),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정리하면 — 발진은 잡음이 루프를 돌며 자라나는 것에서 시작하고, 진폭이 커져 TR의 이득이 줄어드는 지점에서 안정됩니다. 시동에는 루프 이득 여유가 필요하며, 아슬아슬한 설계는 온도·부품 편차에 시동 실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콜피츠와 하틀리, 공진회로를 나누는 두 가지 방식

LC 발진기의 대표 주자 두 가지는 되먹임 신호를 탱크 회로의 어느 부분에서 뽑아내느냐로 갈립니다. 하틀리 발진기(Hartley Oscillator)는 인덕터를 둘로 나누거나 중간 탭을 뽑아 그 지점에서 되먹임을 받고, 콜피츠 발진기(Colpitts Oscillator)는 커패시터 두 개를 직렬로 놓고 그 가운데에서 되먹임을 받습니다.

공통이미터 TR은 신호를 180도 뒤집고, 탱크의 분압점이 다시 180도를 뒤집어 한 바퀴 합계 360도가 되는 구조입니다. 발진 주파수는 각각 다음과 같이 계산합니다.

콜피츠: f = 1 / (2π√(L × C1C2/(C1+C2)))   |   하틀리: f = 1 / (2π√((L1+L2) × C))

예를 들어 인덕터 10μH에 C1=C2=100pF인 콜피츠 회로라면, 직렬 합성 용량이 50pF이므로 f ≈ 1/(2π√(10μH×50pF)) ≈ 7.1MHz가 나옵니다. 역사적으로는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의 랠프 하틀리가 1915년 먼저 발명했고, 같은 회사 동료 에드윈 콜피츠가 이를 커패시터 버전으로 바꿔 1918년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하틀리의 쌍대(dual) 회로가 콜피츠인 셈입니다(출처: 위키피디아, Colpitts oscillator). 실무에서는 코일 탭을 뽑는 번거로움이 없어 콜피츠를 더 많이 씁니다.

한 줄 요약

콜피츠는 커패시터 두 개의 분압점, 하틀리는 인덕터의 탭에서 되먹임을 받는 LC 발진기입니다. 둘은 서로의 쌍대 회로이며 실무에서는 코일 탭이 필요 없는 콜피츠가 더 흔합니다.

크리스탈 발진, 인덕터 자리에 수정을 앉힌 콜피츠

LC 발진기의 약점은 주파수 안정도입니다. 온도가 변하면 인덕터와 커패시터 값이 함께 흔들리고, 공진의 날카로움을 나타내는 Q도 수십~수백 수준에 그칩니다. 그래서 정확한 시간 기준이 필요한 곳에는 석영(quartz) 결정의 압전 효과를 이용한 크리스탈 발진기를 씁니다.

크리스탈은 전기적으로 보면 Q가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초정밀 공진기입니다. 쉽게 말해 한 번 흔들리면 오래도록 같은 박자로만 흔들리는 아주 고집 센 소자라, 주파수 오차를 ppm(100만분의 1) 단위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MCU 옆에 크리스탈과 커패시터 두 개를 붙이는 회로를 피어스 발진기(Pierce Oscillator)라 부르는데, 사실 이건 콜피츠 회로의 인덕터 자리에 크리스탈을 넣은 것과 같습니다. IEEE 회로 및 시스템 매거진의 콜피츠 발진기 리뷰 논문도, 1924년 조지 피어스가 진공관 발진기의 되먹임 경로에 크리스탈을 넣어 이 회로를 소개했으며 피어스 회로가 콜피츠와 같은 계열이라고 정리합니다(출처: IEEE Circuits and Systems Magazine, 콜피츠 발진기 리뷰). 지금 우리가 MCU 핀 두 개에 크리스탈을 걸 때마다 100년 전 콜피츠 회로를 그대로 쓰는 셈입니다.

한 줄 요약

크리스탈 발진기는 Q가 수만 이상이라 ppm 단위의 안정도를 냅니다. MCU 옆의 피어스 회로는 콜피츠의 인덕터 자리에 크리스탈을 넣은 같은 계열의 회로입니다.

부하 커패시터 계산, 커패시터 값이 곧 CL은 아니다

크리스탈 데이터시트에는 반드시 부하 정전용량(CL, Load Capacitance)이 적혀 있습니다. 이 값은 제조사가 "이 크리스탈은 회로에서 이만큼의 커패시턴스를 보게 될 때 정확히 표시된 주파수로 진동한다"고 보증한 조건입니다.

많은 분들이 놓치는 점은, 이 CL이 바깥에 단 커패시터 한 개의 값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쪽 커패시터 C1, C2가 직렬로 보이고, 여기에 MCU 핀과 기판 배선이 가진 부유 정전용량(Cstray)이 더해진 값입니다. CL ≈ C1C2/(C1+C2) + Cstray이고, C1=C2=C로 맞출 때 C = 2×(CL − Cstray)입니다.

국내 부품 유통사 기술 포럼에서도 이 공식을 소개하며, 부유 정전용량은 보통 2~5pF 범위이지만 실제 값은 측정이 어려워 실험으로 보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합니다(출처: DigiKey 기술 포럼, 수정 발진기의 부하 커패시터 선택하기). 예를 들어 CL이 6pF이고 Cstray를 3pF로 가정하면 C1=C2=6pF가 계산됩니다. 여기에 12pF를 달면 실제 CL이 9pF가 되어 3pF나 초과합니다.

구분 LC 발진(콜피츠·하틀리) 크리스탈 발진(피어스형)
주파수 결정 소자 인덕터+커패시터 석영 크리스탈
공진 Q(대략) 수십~수백 수만~수십만
주파수 안정도 낮음(온도·부품 편차에 민감) 높음(ppm 단위)
주파수 가변성 쉬움(다이얼, 바랙터 튜닝) 거의 고정(미세 조정만)
대표 용도 라디오 튜너, VCO, 가변 주파수 발진 MCU 클럭, RTC, 통신 기준 주파수

하루 4초씩 틀어지던 장비 시계, 범인은 12pF 커패시터

서두의 사고를 풀어보겠습니다. 현장에 나간 장비의 로그 타임스탬프가 한 달쯤 지나면 NTP 서버 시간과 2분 안팎으로 어긋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 저장이나 변환 코드의 버그를 의심했고, 로그 쪽 소프트웨어를 일주일 가까이 뒤졌습니다.

단서는 어긋나는 방향과 속도가 늘 일정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버그라면 불규칙해야 하는데 항상 같은 쪽으로 거의 같은 속도로 느려지고 있었고, 이건 시간 기준 자체가 살짝 틀렸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때서야 RTC용 32.768kHz 크리스탈 쪽 회로로 눈을 돌렸습니다.

크리스탈 데이터시트의 CL은 6pF였는데, 기판에는 12pF 커패시터가 두 개 달려 있었습니다. 이전에 쓰던 다른 모델 레퍼런스 회로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그쪽 크리스탈의 CL이 12.5pF였다는 걸 확인하지 않은 것입니다. 계산해보면 실제 CL은 12/2+3 = 약 9pF로, 규격보다 3pF 초과였습니다.

CL이 초과하면 크리스탈은 규격 주파수보다 느리게 진동합니다. 크리스탈 설계 자료들은 CL이 틀어졌을 때 pF당 대략 15~30ppm 정도 주파수가 끌려간다고 정리하는데(출처: Wevolver, 피어스 발진기 설계 가이드), 3pF 초과면 약 50~90ppm의 오차가 됩니다. 1ppm이 하루 0.0864초이니 하루에 4~8초, 한 달이면 2~4분이 어긋나는 계산이고 현장 보고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부하 커패시터를 6pF로 교체하자 시간 오차가 눈에 띄게 줄었고, 이후로는 회로를 복사해 올 때 크리스탈의 CL부터 확인하는 걸 첫 번째 체크 항목으로 삼았습니다. 같은 원리로 오실로스코프 프로브를 크리스탈 핀에 직접 대면 프로브의 기생 용량 때문에 CL이 틀어져 측정 자체가 주파수를 바꾸므로, 확인할 때는 MCU의 클럭 출력 핀으로 주파수를 재는 것이 안전합니다.

한 줄 요약

크리스탈 부하 커패시터는 CL 스펙에서 거꾸로 계산해야 하며, CL이 3pF만 틀어져도 50ppm 넘는 시간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어긋남의 방향과 속도가 일정하다면 시간 기준부터 의심해야 합니다.

참고 링크

콜피츠와 하틀리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20세기 초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에서 대서양 횡단 무선전화 실험을 준비하던 같은 팀 동료였습니다.

랠프 하틀리가 1915년 코일 탭을 이용한 발진기를 먼저 만들었고, 그의 동료 에드윈 콜피츠가 같은 구조를 커패시터로 뒤집어 보자는 아이디어로 1918년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1915년에는 이들 팀이 실제로 최초의 대서양 횡단 무선전화 시험에 성공했으니, 한 팀 안에서 서로의 회로를 보고 "그럼 반대로 해보면?" 하고 던진 질문 하나가 지금까지 교과서의 두 장을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출처: 위키피디아, Edwin H. Colpitts). 회로 하나를 뒤집어 보는 단순한 호기심이 100년 넘게 살아남는다는 게 새삼 흥미롭습니다.

· 기사 링크: DigiKey 기술 포럼, 수정 발진기의 부하 커패시터 선택하기

· 뉴스 링크: 트랜지스터 시장 규모와 성장 전망(2026-2032년)

· 학회 링크: IEEE Electron Devices Society

· 논문 링크: IEEE Circuits and Systems Magazine, 콜피츠 발진기 리뷰(2020)

자주 묻는 질문 Q&A

Q1. 발진회로가 시동이 안 걸리는 가장 흔한 원인은 무엇인가요?

루프 이득 부족이 가장 흔합니다. 크리스탈이라면 부하 커패시터가 너무 크거나 크리스탈의 등가 저항이 규격보다 높을 때, 낮은 전원 전압이나 저온 환경에서 시동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동 여유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기본입니다.

Q2. 크리스탈 두 개 중 어느 쪽 커패시터를 크게 해야 하나요?

대부분 C1=C2로 같게 두는 것이 권장됩니다. 두 값을 다르게 하면 크리스탈에 걸리는 구동 레벨과 시동 여유가 달라지는데, 이는 증폭단의 이득과 맞춰 미세 조정하는 전문 영역에서만 의도적으로 씁니다.

Q3. 크리스탈 배선은 어떻게 하는 게 좋나요?

크리스탈과 부하 커패시터를 MCU 핀에 최대한 가깝게 붙이고 배선을 짧게 하는 게 핵심입니다. 배선이 길면 Cstray가 커져 CL이 틀어지고, 주변 신호선의 노이즈도 끌어들입니다. 아래쪽 층에 다른 신호선을 지나가게 하지 않는 것도 기본 수칙입니다.

Q4. 크리스탈 주파수는 온도에 따라 얼마나 변하나요?

크리스탈 종류마다 다르지만, 일반 AT컷 크리스탈은 상온 부근에서 매우 안정적이고 극단적인 온도에서 편차가 커집니다. 32.768kHz 시계용 크리스탈은 상온에서 가장 빠르고 온도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포물선 모양으로 느려지는 특성이 있어, 환경 온도가 크게 변하는 현장에서는 온도 보상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Q5. 이걸로 TR 시리즈가 끝나는 건가요?

네, 11편으로 BJT 중심의 TR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증폭, 스위칭, 전류 제어와 바이어스, 전력 변환, 신호 처리와 발진까지 5가지 용도별 분류를 모두 훑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루지 않은 MOSFET과 IGBT는 별도 시리즈에서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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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오늘 다룬 내용을 정리하면, 발진회로는 증폭기에 양성 되먹임을 걸어 바크하우젠 조건을 만족하는 주파수에서 스스로 진동하게 만든 회로입니다. LC로 주파수를 정하면 콜피츠·하틀리, 크리스탈로 정하면 피어스형이 되고, 이 셋은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입니다.

제가 시계 오차로 겪은 것처럼, 크리스탈 회로는 부품 몇 개 안 되는 단순한 구조라 오히려 CL 한 줄을 확인하지 않고 지나가기 쉽습니다. 발진회로를 설계할 때는 항상 스펙의 CL부터 읽고, 부하 커패시터를 거꾸로 계산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것으로 TR 시리즈 11편을 마무리합니다. BJT의 구조와 동작 원리(1편)에서 출발해 증폭, 스위칭, 전류 제어, 전력 변환, 신호 처리와 발진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결국 모든 회로가 트랜지스터 하나의 '작은 전류로 큰 전류를 조종한다'는 성질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리즈에서도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 이야기를 계속 풀어드리겠습니다.

본 글은 필자의 실무 경험과 공개된 기술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참고용 정보이며, 특정 부품의 선정이나 회로 설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실제 설계 적용 시에는 반드시 해당 부품의 최신 데이터시트와 안전 규격을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